육상 전력망으로 연결하는 커넥팅 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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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oajfieo 작성일25-04-19 20:04 조회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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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전력망으로 연결하는 커넥팅 파트.38도선 북쪽을 장악한 김성주(자칭 김일성)를 후견하는 소련은 38도선을 두고 남과 북의 긴장관계가 높아지는 가운데 1948년 5월 38도선 남쪽으로 향하는 전력망을 차단하는 조치를 시행했다.수풍댐과 발전시설은 만주국과 조선이 합작으로 진행했으며1952년에는남한 전력량의 50% 이상을 미군 발전선이 감당했고, 한반도를 떠나는1955년까지연간 남한전력수요의 1/3을 감당해냈다.2025년 대한민국은 손꼽히는 전력생산국으로 원자력발전소를 기반으로 화력 및 수력발전소를 보충해 A.I. 및 전기차 등 전력수요가 크게 늘어날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대한민국은 그 후로도 예비전력부족/오일쇼크 등으로 주기적으로 제한송전을 실시했으나1978년58.7만 kW급 '고리'원자력 1호기가 준공되면서 심각한 전력부족상황은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YFP-1 Jacona ( 오키나와, 1970년 1월)1945년 해방과 함께 38도선으로 한반도가 분단되었을 때 일본제국의 정책에 따라 북쪽에는 공업시설이 남쪽에는 농업시설 중심으로 산업기반이 구축된 바 38도선 이남지역은 대규모 전력생산기반이 거의 없다시피했다.그 과정에서 디엠의 친척을 납치해 협박/살해하는 바람에 호치민과 디엠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수풍발전소와 댐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인데유사한 문제가 발생했다.메인주 상업서비스에 이어 뉴-햄프셔주에서 전력생산보조역할을 수행하며 포츠머스의 전력요구량의 15%를 감당했다(증기기반 발전전력의 30% 감당).한국전력상황이 차차 호전되자 발전선'자코나'는 오키나와로 이동해 '류큐 발전회사'의 전력공급을 지원했다.이 당시 이유로는1971년YFP-1'자코나'는 필리핀 고객에 매각되었다.1014 급 선박은7500 DWT(선박이 침몰없이 적재가능한 무게의 한계, 재화중량톤수) 화물수송선으로 유류보일러를 활용해 생산하는 증기로 동력을 얻는 증기엔진선박이었다.1947년 11월 18일에도 갑작스럽게 2시간 동안 송전을 중단해 남한지역에 혼란을 야기했고 그후에도 발전소 사고/수리 등을 이유로 전력량 절반공급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한반도 전체 발전설비용량은 합계 172만 3천 kW 였고이후 38도선 이남의 5/10총선거가 실시되자 북측은5월 14일 정오에 일방적으로 단전을 실시했다.'Jakona(2만kW)'로 명명된 발전선은 부산항에6900kW급 발전선 'Electra'는 인천항에 투입되었다.그중 38도선 이남의 설비는북측은1946년 12월에도이로 인해 전체 전력의 80%는 소련이 후원하는 김성주(김일성)일당의 손에 들어간 상태였다.흔히 해방과정에서 호치민만 유명한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호치민 못지 않게 이 시절 응오딘디엠(고딘디엠)은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로 인기가 상당했다.미 경제협력국(Econimic Coopertation Administration)은 대한민국 전력인프라를 구축하기위해 2만2천kW급 수력발전시설과 6만kW급 증기동력 발전기를 설치했다.그러나 발전소, 특히 원자력발전소의 신규건설과 같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니만치 언젠가 선박에 탑재 가능한 소형원자로를 기반으로 다시금 발전선박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자코나의 발전설비는 2개였기에 나머지 하나가 이를 만회해야했고 무리해야했던 이 발전설비는 과열을 피할 수없었고 결국엔 과열되어 퍼지고 말았다.부전강 수력발전소(20만 kW, 1932년 최초) / 장진강(33만 kW) / 허천강(35만 kW) / 수풍(60만 kW)으로 한반도 북부수계에 집중되었다.38도선 이남은 겨우 20만kW(11.5%)를 확보하고 있었다.이때문에10년간 동부해안에서 발전업무보조역할을 수행하다1945년전시해사국(War Shipping Administration)으로 전환되어 육군에 임대된다.수력 6만 2천 kW / 화력 13만 7천 kW에 불과했다.이 두척의 발전선은48년 5월 14일단전 직후 38도선 남쪽 전력요구량의 20%를 감당하며 최악의 전력난을 완화시키는데 힘을 보탰다.● 부칸국장.38도선 이남의 전력은 평양~수색변전소간 송전선로와 화천~부평을 연결하는 '한강'선이 사실상 전부였다.5.5만 kW를 북쪽으로부터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이 발전선은 한국전쟁기 다수의 발전소가 파괴된 상황에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났다.일제강점기 일본이 대륙으로의 확장을 염두에 두고 한반도 북부에 대규모 중화학공업단지를 구축하면서 이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개마고원과 압록강 수계에 대규모 수력발전소를 건설했기에 38도선 이남의 전력설비는 상대적으로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소련측은 미/소양국 전문가들이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전기요금을 책정하자는 미국의 제안도 거부했다.한마디로 독재자로 흑화되기 전에 잘나가던 시절 이야기다.미군정당국은 10만kW 전력협정을 체결하고 그 대금을 현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으나 이후 요금의 지불 방법/액수 산정등을 둘러싸고 대립하던 상황에서 1948년 5월 10일《제헌국회의원 선거》가 실시 되자부칸은 이를 방해하기 위해서 단전조치를 강행했다.한반도와 유사하게 분리 독립과 분단을 겪은베트남 역시 유사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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